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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

서양악기의 상징과도 같은 피아노. 대한민국 최초의 피아노는 1900년 3월에 등장했다. 1899년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대구지부에서 근무하던 영국 출신의 사이드 보텀(한국이름 사보담) 선교사에 의해서이다.
그는 아내를 위해 미국에서 피아노를 들여오기로 하고, 1900년 3월 26일 부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뱃길로 피아노를 옮겨 대구 화원 사문진(현 달성군 화원읍) 선착장에 내렸다.

피아노를 대구 종로의 집까지 보내는 데 3일이 걸렸는데,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잘 정리해서 미국에 있던 부모에게 편지로 보낸 바 있다. 사라 커티 그린필드 등 사보담의 자손들은 이 편지와 함께 사보담의 유품들을 지난 2009년 부산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피아노는 현재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에 있다.

짐꾼들이 피아노를 옮기는 장면(1900.3.26.-28)
짐꾼들이 피아노를 옮기는 장면(1900.3.26.-28)
100대 피아노 콘서트
최초의 피아노 유입을 기념하는 공연, [100대 피아노 콘서트]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달성군 화원읍의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근거해 대구 달성군이 2011년부터 해마다 펼쳐온 특별한 공연이다. 공연은 매년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2017년 5월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시에서 후원하는 피아노축제인 ‘PIANO CITY MILANO’와 상호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근대음악의 태동지

전쟁의 폐허 속,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도시

대구에 서양음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부터이다. 1907년 신명여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고, 1912년에는 계산성당에 악대가 조직됐다. 1916년 박태준의 지휘로 남성교회에서 대구 최초로 찬송가 합창공연이 열렸다. 이듬해인 1917년에는 박태원, 박태준, 현제명 등이 참여하는 제일교회 성가대가 조직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는 1920년 박태준이 작곡한 ‘가을밤’이다. 박태준 외에도 대구에는 ‘고향생각’, ‘춘향전’ 등을 작곡한 한국 서양음악사의 큰 별 현제명, 우리나라 최초의 바리톤 독창자 김문보, 대구에서 처음으로 독창회를 가진 테너 권태호 등 한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근현대 음악가가 수두룩하다.

1946년 대한민국 최초로 대구에서 문을 연 고전음악감상실 ‘녹향’. 성악가를 꿈꾸던 고 이창수 옹이 SP레코드판 500여장과 축음기 1대로 출발,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을 온 예술인들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동시에 수많은 예술작품의 산실이 되었다.

현재는 그 아들이 대를 이어 ‘녹향’을 꾸려나가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 한 외신에서는 대구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도시’로 묘사했다. 그만큼 대구는 음악 사랑이 특별한 곳이었다.

녹향 창업주 고(故) 이창수
녹향 창업주 고(故)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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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