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
서양악기의 상징인 피아노가 대한민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0년 3월입니다. 당시 미국 북장로교 대구지부에서 근무하던 영국 출신 선교사 사이드 보텀(한국 이름 사보담) 선교사가 아내를 위해 미국에서 피아노를 들여왔습니다. 3월 26일 부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대구 화원 사문진(현 달성군 화원읍) 선착장에 도착한 피아노는 3일 동안 운반되어 대구 종로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보담 선교사는 운반 과정을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편지로 상세히 전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2009년 편지와 유품을 부산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최초 피아노의 유입 경로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현재 이 피아노는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 최초의 피아노 유입을 기념하는 공연, [100대 피아노 콘서트]
-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을 기념하여,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나루터에서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특별한 공연입니다. 공연은 매년 큰 성황을 이루었으며, 2017년 5월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시 후원 피아노 축제 ‘PIANO CITY MILANO’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근대음악의 태동지
전쟁의 폐허 속,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도시
대구에 서양음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입니다. 1907년 신명여학교에서 피아노가 가르쳐졌고, 1912년에는 계산성당에 악대가 조직되었습니다. 1916년 박태준의 지휘로 남성교회에서 대구 최초의 찬송가 합창공연이 열렸으며, 1917년에는 박태원, 박태준, 현제명 등이 참여한 제일교회 성가대가 조직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가을밤’(1920, 박태준)을 비롯해, ‘고향생각’, ‘춘향전’ 등을 작곡한 현제명, 바리톤 김문보, 테너 권태호 등 많은 근현대 음악가들이 대구에서 활동하며 한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1946년 문을 연 대한민국 최초의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은 SP레코드와 축음기 한 대로 시작해, 한국전쟁 시기 대구로 피난 온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으며, 수많은 예술작품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녹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시기 한 외신에서는 대구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도시’로 묘사할 정도로, 대구는 음악 사랑이 깊은 도시입니다.

